최인영

Choi In Yeong

⟪피딩백을 단 할머니 시간 조각⟫, 가변 크기, 연질 호스, 수액 조절기, 먹, 스컬피, 철사, 하트 펜던트, 나뭇가지, 낚시바늘, 김언희의 시집, 2024

"속이 문드러진다”는 말을 하는 여자들을 떠올리며 먹을 갈았다.

검은 액체 중에서 수성일 것, 그리고 탁한 검은 빛일것. 먹은 그것에 들이는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력있는 재료다. 재료를 사서 바로 주입하는 식이 아니라, 먹을 갈아야 한다는게 꽤 정성스러운 느낌이 있다. 사실 먹은 만드는 과정부터가 그러한데, 천천히 불을 지펴 연기를 내어 그을음을 걷어내고 그것을 아교과 섞어 먹 반죽을 만든 뒤 오랜 시간 말린다. 또한 먹은 그 수명도 있어 50년이 흐른 뒤에는 "아교가 더이상 수분을 붙들 힘이 없어 먹이 갈라진다"고 한다.

이는 구작인 <뼈의 시간>(2019)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혈관 봉합 수술처럼 정교하고 세밀한 작업처럼 보이고 싶다. 먹을 한참 갈아내어 호스에 주입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금씩 주사하는 방식은 공기가 많이 차므로 불가능하다. 한번에 밀어넣어야 한다는 전문가의 말에, 통 가득 먹물을 갈았고 에어펌프와 호스를 연결해 먹물을 주입했다.

선형적인 시간으로 감각되던 그녀의 기억이 뒤틀리고 엉켜 그녀를 침대에 꼼짝없이 붙들게 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작업을 만들었다.

바닥으로 흐르는 호스 그 사이로 김언희의 시 <990412> 를 펼쳐 두었다.

...
기억의 피댓(皮帶)줄에 휘감겨 나를
...

이 시는 단서다.

⟪마지막 디저트;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13x12.5cm, 스컬피, 나무껍질, 하트 펜던트, 철사, 신주, 2024

⟪아사나⟫, 00:10:23, 단채널 영상, 사운드 없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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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할머니의 시간에서 나의 시간으로 옮겨 온다. 머리에서 가장 먼...하찮은 것, 더럽고 냄새나는, 머리만큼이나 들여다보거나 꼼꼼히 씻지 않게 되는 발바닥. 내게 그 이미지는 너무도 보고싶은 것이었다. 내가 가장 가뿐히 통과했던 알바 자리에서 늘 마주하는 여자들...그 여자들이 뛰어다니는 게 마치 피댓줄의 휘감김, 언젠가 박쥐가 토포 상태에 들어가듯이 거의 기절하는 쉬는시간들. 그런 것들은 내게 그들이 미끄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원하는 이미지를 보기 위해서는 우선 촬영용으로 쓸 구조물이 필요하였다. 샤워부스에 앉아 부스에 발을 대고 발길질을 했다. 반사된 카메라 녹화를 알리는 빨간 불빛이 마치 포르노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미끄려져 내려가고 또다시 올라오는 운동이 중요하여서 물의 힘을 빌렸다. 물이 흘러 내려오는 방향과 발의 각도는 일반적으로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과는 별개로 뒤틀려있다. 이 어긋남은 할머니의 어긋난 시간과 어떻게 공명할 수 있을까?

코티지 치즈와 비스켓 한 조각을 하룻동안 쪼개 먹고 탈진할 때까지 달리며 부드러운 곡선이 점차 깎여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는 캐럴라인 냅을 자주 생각했다. 달리기는 내게 고통을 표출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식이고, 캐럴라인에게는 드디어 욕구의 통제권을 거머쥐었다는 희열이었고, 관상동맥 질환을 앓는 아빠에게는 재발을 막기 위한 필사의 선택으로, 전애인에게는 고통을 더 큰 고통으로 하여금 망각하기 위한 수단이었다.